농협에 편지를 보낸 후 기도하고 있는 내게 지역 농협 전무와 담당 직원이 찾아왔다. 그들은 우선 방안에 가득 차있는 내 농업서적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시골에서 농업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집이나 새마을지도자의 집에 찾아가보아도 농업전문서적은 별로 없는데 내겐 토양학과 기상학 책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농협은 내게 돈을 빌려줘도 좋은지 조사를 나온 것이다.“양봉은 실패가 없느냐?”라고 먼저 물어왔다.
“양봉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4년간 써온 양봉일지가 있고 기상대에 찾아가 얻어온 50년 기상통계자료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80% 정도 맞습니다. 저를 믿고 5만 원만 융자해 주십시오.”
농협은 내가 조합원이 아니지만 특별히 5만 원을 융자해주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을 몇 개월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양봉을 하면 가장 어려운 것이 꿀의 판로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내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큰 도움을 주신 분이 영천지역에서 지명도가 높은 정규일 장로였다. 꿀을 못 팔 때는 정 장로님이 팔아주시곤 했다. 벌통 40개로 아카시아꽃에서 15말을 뜨고 청송 싸리꽃에서 20말의 꿀을 수확했다. 20년간 양봉을 했지만 그 해만큼 많은 꿀을 떠보지 못했다. 또 융자를 받으며 알게 된 농협 직원들이 사주었고 전에 먹었던 사람들이 꿀이 좋다고 다시 구입하자 몇 말 떴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잘 팔렸다. 하나님께서 농협을 통해 꿀의 판로까지 개척해두셨던 것이다.
이때 꿀 값은 1되에 1800원이었다. 농협 빚 5만 원을 갚고도 50만 원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손에 쥐었다. 당시 마을에서 논 1평 값이 340원(현재시가 7만원)이어서 800평을 구입하고도 20만 원이라는 돈이 남았다. 1971년 1월 결혼식을 치르고도 봄에 쓸 양봉비용까지 남았으니 이해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 이후 매년 농토를 살 수 있었고 86년에는 (시골에 정착한 지 11년째)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15년째에는 마을에서 드디어 부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수 믿다 망한 사람 이야기 들으면 우리도 망한다.”라며 청년들이 오지 않던 것에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던 것보다 5년이나 앞서 모든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급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단번에 단시간에 기도 응답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기도응답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비록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요원한 것만 같아도 우리의 간구와 중심을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보고 계신다.
당시 내가 출석한 교회는 영천 3사관학교 옆에 있던 단포교회였다. 시골에서 부자 소리를 듣게 된 데에는 아내(남두이 집사)의 힘도 컸다. 아내의 고향은 경주 안강이었고 처녀시절에 누에를 친 경험이 있었다. 70년부터 정부에서는 농가소득을 위해 잠업을 많이 권장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이 잠업 시범마을로 선정되었다.
잠업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이었지만 벼농사보다 3배의 소득이 있었다. 누에를 많이 칠 때는 봄에만 8장을 길렀다. 1장의 누에는 2만 마리이고 누에 1장 수입은 송아지 한 마리 값이었다. 누에를 치다보면 연중 보통 20∼30%는 실패한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실패가 없었고 남들의 누에보다 견층이 두꺼워 항상 최고 등급인 수등을 받았다.
정리=김무정기자 moojeong@kmib.co.kr
[국민일보 2002-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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